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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시 책

당신을 위한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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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은 오염시키는 것에 타고났다.
단어를 그런식으로 한정되게 되면 우리의 세계도 그만큼 축소된다.

말이 되는 도시

길에는 사람이 없는데 카페 안에는 어떻게 사람이 많지?

걷는다는 것이 권력이 없고 지위가 낮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리베카 솔닛-

걷는 행위는 빈곤한 동시에 부유하다.
그러나 좋은 친구들이 그렇듯, 그들은 충고도 비판도 없이 묵묵히 내 말을 듣고 공감하고 위로해 준다.

광화문에서 종로로 가는 길에 있는 빌딩들은 최고 십여 년 사이에 새롭게 지어지거나 리뉴얼을 했고
여담이지만 작가가 되는 데 가장 필요한 재능은 착각이다.
문장력이 좋거나 머리가 좋거나 인내심이 있거나 책을 좋아하거나 기타 등등 그런게 아니라,
내가 시인이나 소설가가 될 수 있다, 라는 착각이다.

동시에, 뭔가를 해내는 인간들의 성취 중 많은 경우가 단지 자기 확신 때문에 가능했다는 사실은
세상이 왜 이렇게 엉망인지 알려주는 것 같다.

"내가 원하는 건 산책이나 도시라는 말을 중심으로 잠재되어 있는 무언가를 건드리는 것이다"

-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지돈씨?
물론 그럴 필요는 없다. 세상에 진정으로 필요한 건 아무것도 없다.


보들레르에서 시작되어 발터 벤야민에 의해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잡은 플라뢰느는 도시 산책자, 만보객 등으로 번역된다.
프라뇌르의 산책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산택과는 조금 다르다.
우리에게 산책이 휴가와 여가, 고요하고 평화로운 걸음이라면 플라뇌르의 산책은 산만하고 어수선하며 위험하기까지 하다. 이들이 걷는 곳은 도시의 뒷골목이나 요란한 상가, 백화점이고 가끔은 밤 문화와 거래를 맺기도 한다.

목적지는 정해져 있고 도시는 뼈째로 발려 먹혔다.
이제, 아무도, 도시에서, 현기증을, 느끼지 않는다.

몰 MALL
우아하게 산책하기 좋은 곳

세계는 좋은 의도를 무참하게 짓밟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
심지어 의도가 선할수록 부작용은 더 크다.
그러므로 현재 예술에서 의도 자체를 폐기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여담이지만 내가 쓴 대부분의 글이 그렇듯 나는 어딘가에 가지 않았을 때 그곳에 대해 더 잘 안다.

사람들은 발로 뛰는 경험이라는 관념에 너무 사로잡혀 있다.
경험은 상상력을 제한한다.

사람들은 뭔가를 겪고 나면 자신이 그걸 아주 잘 아는 것처럼 군다.
중요한 건 어떤 종류의 경험이냐는 것이다.
고르기아스의 전언처럼(경험)해도 모르고, 안다 한들 전달하지 못하는 상태가 인간의 한계일까.

아무것도 진정으로 알 수 없지만 대충은 안다고(가정)하고
대략적인 합의에 이를 수 있다는 사회적 약속
쉽게 말해 우리 삶의 근본 전제는 '대충'이다.

"거리에서는 자유라는 단어를 들먹이는 사람이 없다.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것이 자유이기 때문이다"


파리는 놈팡이에게 중요한 도시이다.
파리는 빈둥거림을 위해 특별히 설계되었고, 건설되었고, 배치되었다. 라고 [부르주아의 골동품]의 저자 레미 세슬래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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